대구 성서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 때까지 쭉 자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교육에 정성을 쏟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본인도 잘 따라서 초등학교 때는 늘 반에서, 학교에서 손꼽히는 성적이었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본 시험에서도 1등을 했으니 주변에서도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한다.
반의 절반 넘게 노는 분위기였고, 술이나 담배를 하는 친구도 적지 않았다. 그 나이에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라서, 친구를 가려 사귄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다.
성적은 빠르게 떨어졌고, 어머니는 학교에 자주 불려 가셨다고 하니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을 거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공부하는 학생이 오히려 놀림을 받는 곳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 끝 무렵 마음을 다잡고, 몇 안 되는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 1년을 버텨 경북대 공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대기업을 거쳐 공기업에 다니며, 결혼 후 범어동으로 옮겨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분이 정리한 학군지와 비학군지의 차이는 아주 짧았다. 학군지에서는 공부를 안 하면 이상한 아이가 되고, 비학군지에서는 공부를 하면 이상한 아이가 된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건, 아이 혼자 버티라고 하기에는 환경의 힘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대구 서구 비산동에서 자란 또 다른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잘했지만, 주변에 공부하는 친구가 없으니 굳이 나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분은 사범대에 진학해 학군지 쪽에 있는 정화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자기가 중학생 때 흔히 보던 거친 모습의 아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지는 생각보다 약하다.
혼자 책 한 권을 읽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 독서 모임에 나가는 쪽이 훨씬 꾸준히 읽게 되는 것처럼, 공부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을 때 이어지기 쉽다.
특히 나를 만들어 가는 10대에는 이 영향이 더 크다. 실제로 주변에 공부하는 아이가 많을수록 따라 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학군지가 의미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조금 다른 시선도 있었다. 시지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대륜고를 나온 사람은 중학교 때는 다툼이나 따돌림이 많았지만 고등학교에 가니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같은 동네라도 학교마다, 나이대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지방 작은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그래도 공부하는 친구는 건드리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고 하니, 지역마다 사정이 다 다르다는 것도 기억해 둘 만하다.
그렇다고 학군지가 정답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학군지에도 학교폭력은 있고, 다만 크게 알려지기 전에 조용히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며 담임선생님에게 연락하는 부모가 늘었다는 말도 들린다.
어디에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있지만, 그 정도가 동네마다 다르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또 하나 짚어볼 점은, 학군지로 옮긴다고 아이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학군지는 전체적인 기본 수준이 높을 뿐, 그 안에서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도 분명 있다. 큰돈을 들여 이사했는데 아이 성적은 그대로이고, 오히려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감만 떨어졌다며 후회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반대로 비학군지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서, 수시 모집으로 실력보다 좋은 대학에 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머리가 좋다면 학군지에서 실력으로 겨루고, 마음이 단단한 아이라면 비학군지에서 자신감을 채우며 환경을 이겨 내는 길도 있다는 말이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대구에서 학군지라고 하면 흔히 수성구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범어4동과 만촌3동, 이른바 범4만3을 핵심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범어동의 두산위브더제니스나 수성범어W처럼 범어네거리 주변 대단지가 대표적이다. 그다음으로 수성구의 다른 동네와 시지, 북구 침산 정도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성서 이곡동은 성서푸른마을처럼 19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물론 아파트 단지 하나가 아이의 미래를 정하는 것은 아니고, 같은 동네에서 자라 사업가, 전문직,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으로 잘 살고 있는 사례도 많다.
결국 많은 부모가 도달하는 결론은 비슷했다. 학군지가 좋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만한 돈을 쓸 가치가 있느냐는 집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학원비와 노후 준비까지 생각하면 무리해서 최고 학군지에 들어가는 게 답이 아닐 수 있다. 범4만3에 들어가서 돈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울 형편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아래라도 무난하고 분위기 괜찮은 동네를 고르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형편 때문에 전학을 못 갔던 사람이 자기 아이만큼은 학군지에서 키우려 한다는 이야기도,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마음일 거다. 아이를 하나만 낳는 집이 많아질수록 좋은 학군으로 쏠리는 흐름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학군지의 진짜 가치가 명문대 합격보다 공부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하는 습관이 잡힌 사람은 대학에 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경우가 많다.

실수하면 돌아보고 다시 해 보는 힘도 그 시절에 길러진다. 그러니 집을 고를 때 아파트 이름이나 가격만 볼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그리고 그 동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노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