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 제목을 봤습니다. KB금융에서 3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노후에 적정한 생활을 누리려면 월 3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하는 최소 생활비는 월 248만 원, 여행이나 여가, 손주들 용돈까지 챙기는 적정 생활비는 월 350만 원이라는 내용이었죠.
이 숫자를 보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이거 1인 기준인가? 부부 기준인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이 350만 원이라는 숫자는 참 묘합니다. 어떤 분은 월 350이면 아랍 왕자처럼 살 수 있다고 재치 있게 말하는 반면, 또 어떤 분은 수도권에서 부부가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물가 상승 생각하면 500은 있어야 여유롭다고 단언합니다.
실제로 지금 중소기업 다니면서 월 350만 원 못 받는 사람도 태반인데, 9급 공무원 초봉이 200만 원대인데 같은 현실적인 지적도 많았습니다.
평생 250만 원 정도를 벌며 살아온 사람에게 노후에 350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마치 당신의 노후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낙인찍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숨겨진 비용의 함정
이 기사와 여러 의견을 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부분은 적정 생활비라는 말의 정의입니다.
여행, 여가, 용돈 등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후에 생활비로만 돈을 쓰는 건 아니죠.
많은 분이 지적했듯이, 고정 비용이라는 복병이 숨어있습니다.
세금과 건강보험료: 은퇴 후 소득이 줄어도 내가 가진 재산(집, 자동차)에 대한 재산세는 꼬박꼬박 나옵니다. 특히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바뀌는 순간, 건강보험료가 생각지도 못하게 높아져 건보료 폭탄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도 흔히 듣습니다.
각종 공과금과 관리비: 아파트에 거주한다면 매달 내는 관리비도 무시 못 할 수준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관리비와 공과금도 함께 오르죠.
의료비: 최소든 적정이든, 나이가 들수록 병원비 지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됩니다.
월 350은 순수 ‘생활비이고 세금, 보험료 등은 별도 항목이라는 지적을 봤는데, 이게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세금과 건보료, 관리비, 보험료 등으로 매달 100만 원이 고정적으로 빠져나간다면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250만 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니까요.
나의 기준을 세워야 할 때
재미있는 사실은, 23년 조사에서는 적정 생활비가 월 369만 원이었는데, 올해는 350만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는 점입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기대치를 낮추고 허리띠를 졸라맬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사실 이런 통계는 평균일 뿐, 나의 현실과는 다릅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자산 규모가 다르며, 추구하는 삶의 질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골프나 해외여행이 필수적인 여가일 수 있고, 누군가는 동네 산책과 소소한 외식이 여가일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우리에게 당신은 이만큼 준비해야 한다’며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통계에 휘둘려 불안해하기보다는, 나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월 350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지금 당장 나의 은퇴 후 고정 비용부터 계산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은퇴하면 지역 건강보험료는 얼마가 나올까?
내가 가진 집의 재산세는 매년 얼마인가?
매달 숨만 쉬어도 나가는 관리비, 통신비, 공과금은 얼마인가?
이 필수 고정비를 먼저 파악하고, 그 위에 내가 원하는 적정 생활비를 더하는 것.

그것이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노후 설계를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