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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의 진짜 목표


45세에 퇴사하고 제주도에서 커피 내리는 삶, 상상만으로도 월요병이 사라지는 기분이죠.

우리는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늘을 견딥니다. 그 끝에 달콤한 보상만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하지만 만약, 꿈에 그리던 파이어를 달성한 선배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고 있다면 어떨까요? 처음엔 저도 결국 돈이 부족했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백을 깊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돈이 충분했기에 비로소 마주하게 된, 더 근본적인 고민들이었습니다.

한 대기업 부장님은 40대 후반, 모두의 부러움 속에 명예퇴직하며 월 400만 원의 현금 흐름을 완성한 성공적인 파이어족이었습니다.

처음 6개월은 천국 그 자체였죠. 평일 골프, 해외 한 달 살기 등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예상치 못한 공허함에 부딪혔습니다.

지난 25년간 자신의 이름 앞에는 늘 OO전자 OOO 부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라 믿으며 살아왔는데, 퇴직 후 그는 그저 옆집 아저씨가 되어버린 겁니다. 사회의 누구도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고립감,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존재의 이유가 희미해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일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회사로부터의 탈출이 자칫 사회로부터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파이어를 꿈꾸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두려움

유능한 40대 IT 개발자였던 다른 분의 이야기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주식 투자로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상태였습니다.

개발자 시절, 밤샘 코딩과 동료들과의 논쟁 속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파이어 후 1년간은 그동안 못했던 취미 생활을 즐기며 행복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장이 멈춘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AI 혁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자신만 시간이 멈춘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해요. 더 이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넘어야 할 도전도 없는 삶. 편안했지만, 그 편안함이 오히려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많은 분이 파이어를 해도 책도 보고, 요리도 배우고, 자격증도 따면 할 게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50년 이상 남은 인생을 단순히 소비와 취미만으로 채우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장과 도전이라는 본능적인 욕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실패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진정한 승자입니다. 그들은 돈의 힘을 빌려 인생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기업 부장님은 자신의 25년 경력을 살려 스타트업에 주 15시간만 자문해주는 경영 컨설턴트가 되었습니다.

수입은 줄었지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존엄하다고 말합니다. IT 개발자였던 분은 유기견 보호소 홈페이지를 무료로 만들어주는 재능 기부를 시작했고요.

이들의 공통점은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으로 일의 의미를 바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으는 자산은 추락해도 다치지 않게 막아주는 안전망(Safety Net)이 될 수도 있지만, 더 높이 점프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트램펄린(Trampoline)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자산이 단순한 안전망이 아니라, 자신을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이끌어 줄 트램펄린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돈 때문에, 혹은 관계 때문에 억지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사람과 할 수 있는 진정한 직업적 자유를 얻은 셈이죠.

결국 파이어족 선배들의 고백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지긋지긋한 회사로부터 탈출하겠다는 From의 관점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는 To의 관점에서 은퇴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 돈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저의 파이어에 대한 꿈도 이제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한 단단한 트램펄린을 만드는 것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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