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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IRP에 국내 주식형 ETF를 담으면 손해인 이유

  • 기준

그동안 연말정산의 꽃이라는 연금저축과 IRP 가입을 계속 미뤄왔습니다. 연간 900만 원을 납입하면 약 120만 원을 세액공제로 돌려준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죠.

하지만 그 돈이 퇴직할 때까지 수십 년간 묶인다는 점과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결국 세금을 낸다는 점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ISA 계좌는 한도를 꽉 채워 운용 중이라 다음 스텝으로 연금 계좌를 열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번에 시간을 내어 제대로 한번 공부해 봤습니다. 그리고시뮬레이션까지 돌려보게 되었죠.

두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해 봤습니다.

핵심 가정은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국내 주식은 매매 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가 없으니까요.

  • 시나리오 1: 연 900만 원을 IRP에 납입(연 5% 수익 가정) + 세액공제 받은 120만 원은 국내 주식에 투자(연 6% 수익 가정)
  • 시나리오 2: 연 900만 원 전부를 국내 주식에 직접 투자(연 6% 수익 가정)

놀랍게도, 15년 뒤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2번(전부 국내 주식 투자)이 1번(IRP 활용)보다 총금액이 더 많았습니다.

IRP에서 나중에 뗄 세금(약 7% 실효세율 적용)까지 고려하니 그 차이는 더 벌어졌죠. 이 결과를 보고 저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 계산한 건가? 고작 1% 수익률 차이로 결과가 뒤집히는데, 왜 다들 연금저축을 필수라고 하는 거지? 오랜 기간 돈이 묶이는 패널티 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하던 대로 투자를 이어가는 게 맞지 않나 싶었습니다.

근본적인 실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수 1:국내 주식형 ETF를 담는다는 가정

지적해 주신 핵심은, 어차피 비과세인 국내 주식/ETF를 왜 굳이 연금 계좌에 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주식형 ETF는 일반 계좌에서 매매해도 차익에 대한 세금이 0원입니다. 그런데 이걸 굳이 연금 계좌에 넣으면,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를 안 내도 될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죠.

실수 2: 연금 계좌의 진짜 혜택을 놓치다

그렇다면 연금저축이나 IRP는 도대체 왜 필요할까요? 바로 해외 주식형 ETF’에 투자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일반 계좌에서 TIGER 미국 S&P500이나 나스닥 100 같은 해외 추종 ETF를 매매하면 수익의 15.4%를 배당소득세로 냅니다. 하지만 연금 계좌에서 투자하면 이 세금을 당장 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세이연이죠.

세금을 나중에 낸다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복리 효과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듭니다. 세금으로 나갔어야 할 돈까지 원금에 더해져 계속 재투자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방패막

하지만 과세이연보다 더 결정적인 혜택이 있었습니다. 바로 금융소득종합과세와 건강보험료 방어입니다.

우리가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금융 자산이 몇억 대로 불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ETF 수익이나 배당금 등이 연간 2,000만 원을 넘어가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어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소득은 건강보험료 산정에도 포함되어 건보료가 급등하게 되죠. 그런데 연금저축이나 IRP 계좌 안에서 발생한 수익은, 그게 5천만 원이든 1억이든, 이 2,000만 원 한도에 잡히지 않습니다.

즉, 연금 계좌는 세금과 건보료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된 안전지대인 셈입니다. 나중에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3.3~5.5%의 저율 과세만 내면 되니 15.4% 배당소득세는 물론이고 종합과세 및 건보료 인상까지 모두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절세 전략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연금 수령액이 연간 1,500만 원(예전 1,200)을 넘어가면 16.5% 분리과세나 종합과세 대상이 된다고 하던데요? 그럼 고액 자산가에겐 의미 없는 것 아닌가요?

이 또한 놀라운 팁을 통해 해결됐습니다.

연간 1,500만 원 한도는 세액공제받은 원금과 그 운용 수익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즉, 세액공제 한도(연 900만 원)를 초과해서 납입한 돈(세액공제 안 받은 원금)은 이 한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돈은 55세 이전에도 세금 없이 자유롭게 인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수들은 계좌를 분리 운용합니다. 세액공제용 계좌와 세액공제 안 받은 계좌 두 개를 동시에 운용하며 나중에 연금을 인출할 때, 세액공제 계좌에서는 1,500만 원 한도 내에서 빼고 나머지 필요한 돈은 세액공제 안 받은 계좌에서 빼 쓰는 전략을 쓰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실제로는 연 1,500만 원 이상을 인출하면서도 저율 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 긴 묶임 기간: 10년 납입했는데도 안정형 상품이라 수익률이 지겹고 답답하다는 분도 계셨고 장기 투자와 안 맞아서 그냥 직접 투자를 하신다는 분도 계셨죠.
  • 새로운 리스크 (건보료):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최근 정부에서 이 사적 연금 수령액에도 건강보험료(7~8%)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만약 이게 현실화되면 연금소득세(3~5%)에 더해 총 10~13%를 떼이게 되어 혜택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변수입니다.

단기 매매로 후회한 적이 더 많았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매수/매도 타이밍을 맞출 자신도 없고요. 그래서 신경 안 쓰고 무지성으로 월 납입해도 되는 미국 지수 추종 ETF가 저에게 가장 잘 맞는 투자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ETF를 장기 투자할 사람에게 연금저축과 IRP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저도 당장 부동산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 교육비도 한참 들어갈 때라 연 900만 원을 꽉 채우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중국집에서 고민될 때 짬짜면을 시키듯, 일부 금액이라도 당장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1.2만 원 세액공제는 시작을 위한 미끼였고, 진짜 혜택은 과세이연과 종합소득 및 건보료 방어라는 강력한 방패막이었습니다.

사적연금 건보료 부과라는 리스크 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이점들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저처럼 막연하게 미루고 계셨던 분이 있다면,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부터 다시 점검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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